1970~2000년대 슈퍼카의 상징은 배기음이었다. 포르쉐의 플랫식스, 페라리의 V12, 벤틀리의 W12 엔진은 단순한 파워트레인이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포르쉐는 카이엔 쿠페 일렉트릭을, 페라리는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 루체를, 벤틀리는 첫 전기 SUV 토르칼을 공개하며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전기차를 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 브랜드가 얻고자 하는 목표는 조금씩 다르다.

포르쉐 “전기차 시대에도 가장 재미있는 스포츠카를 만들겠다”

포르쉐는 전동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브랜드다.

타이칸으로 이미 전기 스포츠 세단 시장을 개척했고, 이제는 카이엔 쿠페 일렉트릭까지 확대하며 SUV 시장에서도 전동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포르쉐가 팔고 싶은 것은 전기차가 아니다. ‘포르쉐답게 달리는 전기차’다.

카이엔 쿠페 일렉트릭 역시 최고 1,156마력, 2.5초 제로백, 800V 초급속 충전, 액티브 라이드 서스펜션까지 모든 기술이 ‘운전 재미’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포르쉐는 전기차에서도 스포츠카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결국 포르쉐에게 EV는 친환경이 아니라 퍼포먼스를 더 완벽하게 만드는 새로운 도구다.

페라리 “브랜드 철학이 전기에서도 통하는지 시험한다”

가장 어려운 숙제를 받은 브랜드는 페라리다. 페라리는 79년 동안 내연기관 사운드와 감성을 판매해온 브랜드다.

이번에 공개한 루체는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이자 첫 5인승 모델이다. 1000마력이 넘는 출력과 2.5초 제로백, 530km 이상의 주행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의 반응이다.

과연 소비자들이 배기음 없는 페라리를 페라리로 인정할 것인가? 루체는 단순한 신차가 아니다.

앞으로 페라리가 전동화 시대에도 초고가 브랜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프로젝트에 가깝다.

가격을 9억 원대로 유지한 것도 판매 확대보다 희소성과 브랜드 가치를 먼저 지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벤틀리 “럭셔리는 조용할수록 완벽하다”

벤틀리는 세 브랜드 가운데 가장 전기차와 잘 어울리는 브랜드다. 벤틀리가 추구해온 가치는 최고속도보다 정숙함과 품격, 여유로운 퍼포먼스였다.

첫 순수 전기 SUV 토르칼 역시 이런 철학을 그대로 이어간다. 토르칼이라는 이름도 ‘토크’와 같은 어원을 공유하며 힘들이지 않는 가속을 의미한다.

전기모터는 벤틀리가 오래전부터 추구했던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주행’을 가장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래서 벤틀리에게 전기차는 변화가 아니라 오히려 브랜드 철학을 완성하는 과정에 가깝다.

결국 세 브랜드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세 브랜드의 방향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전기차 판매량을 늘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브랜드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포르쉐는 운전 재미를, 페라리는 희소성과 감성을, 벤틀리는 럭셔리와 정숙성을 전기차 시대에도 이어가려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모두가 일반 전기차 시장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테슬라나 BYD처럼 판매량을 늘리는 전략이 아니라, 브랜드가 가진 철학을 전기차에서도 그대로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전동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시대의 흐름이다. 하지만 포르쉐와 페라리, 벤틀리는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다.

오히려 전기차라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지를 다시 증명하려 하고 있다.

앞으로 럭셔리 자동차 시장의 경쟁은 배터리 용량이나 주행거리보다, 브랜드의 감성과 철학을 얼마나 전기차 안에 담아낼 수 있는가에서 승부가 갈릴 가능성이 높다.

  • 에디터 로그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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